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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윤 대통령 명예훼손 보도’ 재판부 “공소사실과 혐의 무슨 연관?”…검찰에 재차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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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작성일24-08-27 23:50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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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허위 보도 의혹 사건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에 혐의와 무관한 내용이 많아 보인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는 23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배임 수·증재, 청탁금지법 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한상진 기자에 대한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김씨와 신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 기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 인터뷰를 하고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혐의로 지난 6월 구속기소 됐다. 검찰은 김씨가 2021년 9월 신 전 위원장을 만나 윤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허위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대가로 신 전 위원장에게 1억6500만원을 건넸다고 본다. 당시 인터뷰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할 당시 불법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에 대한 수사를 무마해 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뉴스타파는 해당 인터뷰는 대선 사흘 전에 보도했는데, 검찰은 파장을 키우려고 의도적으로 대선 직전에 보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혐의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다는 점을 재차 지적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기재한 내용이 ‘명예훼손’ 혐의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검찰은 김씨가 대선에 개입하려는 목적으로 ‘이재명 공산당 프레임’과 ‘윤석열 후보의 조우형 수사 무마 프레임’을 허위로 만들어 유포했다는 취지로 공소사실을 기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해당 프레임이) 윤 대통령의 어떤 명예를 훼손했는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모두 김만배의 단일한 계획 하에 만들어진 범행 도구인 셈이라며 전체 범행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선 공산당 프레임에 대한 내용도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고, 실질은 모두 윤석열에게 불리한 두 개의 프레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문을 제기했던 것과 결이 약간 다르다며 이재명 후보가 공산당처럼 굴었다는 것이 윤석열의 명예훼손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검찰은 추후 다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검찰이 혐의와 무관한 증거를 제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은 이 대표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내용의 기사를 증거목록에 제출했는데 재판부는 범죄사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냐라며 의문을 나타내고 입증 취지를 보강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이 ‘대장동 사건’을 들어 김씨와 이 전 대표와의 유착관계를 공소사실에 명시한 점에 대해서도 거듭 문제가 제기됐다. 검찰은 이날 김씨의 여론조작 범행이 대장동 개발 비리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고, 김씨에게 중형이 선고됐기 때문에 인정된 부분을 공소사실에 기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재판부는유착관계는 (이 사건의) 본류가 아니다라며 이로 인해 대장동 본류 사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미뤄 기일을 추후 정할 수도 있는데, 왜 그런 것을 검찰 스스로 유도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변호인 측도 검찰이 적어도 심판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공소사실을) 특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말마다 오르는 인왕산 자락길에 옥잠화가 피었다. 꽃잎이 백옥같이 흰 옥잠화는 봉오리가 옥비녀(玉簪)와 똑같다. 깨끗하고 유려한 꽃 모습이 아름다워 정조와 다산도 옥잠화에 대한 시를 지었다. 최남선,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평가받던 가야마 미쓰로도 옥잠화를 사랑했다.
1940년 2월20일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그는 ‘창씨(創氏)와 나’라는 제목으로 창씨개명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의지를 밝힌다. 나는 일본인이 되는 결심으로 성을 향산(香山)이라고 하고 이름을 광랑(光郞)이라고 하였다. 내 처자도 모조리 일본식 이름으로 고쳤다. (…)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성과 이름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浪)가 되었다.
2·8 독립선언부터 창씨개명 권고까지, 암울한 시대에 춘원만큼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널뛰기한 인물도 드물다. 창씨개명 천명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1년, 잡지 ‘삼천리’에 그는 옥잠화 단상을 실었다. 화분에 옥잠화를 길렀던 그는 어느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날 꽃이 활짝 핀 옥잠화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애처로워했다. 화분의 흙이 좋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거름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틈틈이 물을 준 덕분에 꽃이 핀 거라며 겸연쩍어했다. 또한 그는 ‘도무지 가꾸지 않아 가느다랗고 키만 큰 국화가 꽃이나 제대로 필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부실한 꽃 기르기를 되돌아보면서, 그 생각이 자식에게까지 번져갔다. 심신이 변변치 못한 자의 씨로서, 게다가 훈육도 못하니 저것들이 자라서 어찌 될까? 그가 주장한 ‘민족개조론’을 고려할 때, 그의 생각은 양화(養花)에서 훈육을 넘어 교민(敎民)으로까지 투영된 모양새다. 그러나 그가 ‘나태하고 비겁하며 표리부동’하여 꽃이나 제대로 필 수 있을지 의심했던 우리 민족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처럼 만개하는 상황을 그때는 어찌 알 수 있었으랴.
옥잠화 단상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갖은 부정(不淨)이 꽉 차고 찌들고 결어서 좀체로 이 생(生)에는 청결이 될까 싶지도 아니하다. ‘아버지는 이렇지마는 너는 이러지 말아라.’ 나는 이런 소리를 자식들에게 여러 번 하였다. 그런 망신이 어디 있을까.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던 그의 자조적 반성이 혹여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당부는 아닐까.
김민기와 상록수
쿠베르탱과 올리브나무
정조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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