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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등장인물만 2234명 ‘의문투성이 그림 한 점’···20년 닳도록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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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작성일24-08-25 20:55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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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는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특이한 회화작품이 있었다. 비단에 섬세하게 그린 대형 8폭 병풍그림(각 폭 113.6×49.1㎝)이다.
화면에는 성으로 둘러 싸인 번화한 도시, 그 도시 속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등장 인물만 2234명에 이르는 대규모 ‘도시 풍속화’라 할 만하다. 화려한 건물, 갖가지 상점, 인파로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팔고, 건물을 짓고, 차와 술을 마시고, 놀이를 즐긴다. 한켠에는 밭갈이 등 농사 짓는 모습, 군사훈련 장면도 있다. 감정이 엿보일 만큼 살아있는 표정, 건물과 사물들의 정교한 표현, 구성과 완성도 등 여러 면에서 화가의 빼어난 역량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제작시기, 화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없다. 더욱이 18~19세기경 조선과 중국의 생활문화 요소들이 융합돼 있어 조선 작품인지, 중국 작품인지 특정하기 힘들 정도다. 건물 외형, 인물 복장 등에서는 중국풍이 강한데 실제 구체적 생활양식, 도구의 활용 등은 조선식이 분명하다. 당시 그림들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어린이들도 많이 등장한다.
구성과 소재, 표현기법 등 여러모로 한국 회화사에서 독창적 작품이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없으니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고, 1913년 이왕가박물관이 200원에 수집한 이래 그저 중앙박물관 수장고에만 있었다.
지난 2000년 가을, 박물관 수장고에서 처음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내가 배운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도상들, 중국적·조선적 요소가 혼재된 그림, 어떻게 해석 해야할까, 도대체 누가, 어디를 그렸을까….
당시 젊은 학예사이던 이수미 중앙박물관 학예실장(59)은 23일 작품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대학·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너무나 특이한 작품을 만난 이후 연구에 깊게 매달렸다. 조선 후기 작품은 물론 중국의 ‘청명상하도’, 일본의 ‘낙중낙외도’ 등 해외 관련 작품도 모조리 살펴보고, 각종 문헌·지도들도 뒤졌다.
마침내 여러 근거를 기반으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꿈꾸고 지향하던 이상적인 사회, 공간을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했다. 평화롭고 풍요한 태평성대의 세상, 새롭고 활기찬 도시에 대한 바람과 염원을 시각화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작품 제목을 기존의 두루뭉실한 ‘풍속도’ 대신 정체성이 담긴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로 제안해 수용됐다.
수장고에 묻혀 잊혀질 위기의 작품이 ‘태평성시도’로 의미부여되며 재탄생한 것이다. ‘태평성시도’는 이후 ‘중국사행을 다녀온 화가들’(2011) ‘산수, 이상향을 꿈꾸다’(2014)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2016) 등 중앙박물관 전시에 소개돼 주목받았다.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 전문가의 논문들도 나왔다.
최근 이수미 실장이 ‘<태평성시도> 연구-조선 후기 이상도시의 시각화’(359쪽, 진인진)를 펴냈다. 동원고고미술연구소 동원학술총서로 나온 책은 ‘태평성시도’의 20여년 연구 성과, 작품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집대성했다.
책은 작품 제목을 둘러싼 일화, 전시를 통한 공개과정, 조선과 중국에서 ‘성시도’라는 개념의 그림들이 나오고 유행한 배경, 실제 조선·중국·일본 등 관련 작품 등 ‘태평성시도’의 미술사적·시대적 의미 등을 먼저 살펴본다. 이어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 사물, 건축물의 표현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2234명의 성별·직업·그려진 상황·의복 등을 조사하고, 말·소·돼지·개·고양이는 물론 낙타·코끼리 등 동물들의 표현, 여러 생활용품, 교통수단, 건축물의 형태나 구조·배치 등도 탐구했다. 모두가 ‘태평성시도’의 제작 시기와 목적, 화가를 추론하는 중요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정보이자 근거들이다. 특히 바퀴 달린 수레 등 당시로서는 첨단 문물, 희귀한 동물, 비주류인 여성의 등장 등은 주목할 만하다.
그림속 문물의 상당수는 박지원 등 조선후기 중국을 오간 지식인들이 관찰·기록한 것들과 아주 유사하다. 외형적으로는 중국의 도시 풍속화로 보이지만 건물의 내부 구조와 세부 부재들, 건물을 짓는 공정, 차려진 밥상이나 디딜방아의 모습, 생활양식 등은 조선의 풍속이다. 화면에 중국 문물을 도입하고 있지만 조선의 풍속화로 재창조, 승화시킨 것이다.
‘태평성시도’의 장황과 화면·공간 구성, 원근법·음영법을 비롯해 상황·장면에 어울리게 담채와 채색을 구사하는 채색공필법 등 표현법, 국내외 작품들과의 비교분석 결과도 담았다. 화면에 격상된 가상공간의 조성, 상업화·도시화의 추구, 마치 본보기를 제시하려는 의도, 여러 회화적 특징 등으로 제작 시기와 작가, 제작의도까지 파악한다.
이 실장은 책의 결론에서 ‘태평성시도’의 제작시기를 1797년 전후부터 1812년까지, 즉 18세기 말~19세기 초로 본다. 세부적 표현에서 화법 차이들이 있어 역량 있는 화원 여러 명이 공동작업한 것으로 추정한다. 구체적으로 김홍도(1745~1806 이후) 화풍의 영향권 내에 있는 화원들이다. 이인문, 김득신을 중심으로 박인수·허용·이명규·김건중 등이다. 나아가 ‘태평성시도’가 왕에게 간접체험을 하게하는 매체로 작용한 궁중회화일 가능성도 제시한다.
이수미 학예실장은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복합적 의미를 지닌 훌륭한 작품을 만나 종횡으로 깊게 파서 그 시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드러내고, 깊이 있는 작품론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며 ‘태평성시도’로 이 꿈을 이루게 됐다고 밝혔다.
책은 학술서이지만 한 작품을 둘러싼 한 미술사가의 끈질긴 연구과정, 새 생명을 받아 부활한 작품의 운명, 또 격동의 시기 도시 풍속화 이야기, 한 미술작품의 보다 깊고 넓은 감상과 이해 방법 등 여러 면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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